■ 일제건축물의 문화재 등록
  | 황보봉 | 서울산업대 건축학부 교수

얼마 전 일본의 한 언론사 간부는 외교통상부장관과의 기자회견에서 이미 다 끝난 일제 강점기 일을두고 거듭 사죄를 요구하는 한국이 정상적인 국가냐고 힐난했다. 정상국가라면 과거사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은 곧 건축인들에게 정상국가라면 침락자들이 남겨놓고 간 건축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에서는 지난 2001년부터 근대건축물을 문화재로 등록.보존하는 사업을 시행해 오고 있다. 문화재청이 문화재에 해당하는 근대건축물을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지는 알수 없으나 시기적으로는 개항기를 전후한 건축물, 특히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을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문화재로 등록된 건축물들은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해 법적.행정적 보호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일제의 식민지배를 영구히 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도 여기에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그것들이 마치 국민 대다수에게 소중한 기억창고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다. 조선총독부가 발주했거나 척식친일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들은 대개 민족자본을 수탈하고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영구히 하려는 식민주의자들의 음모가 들어있는 불순한 것들이다. 그 건물들을 보존하는 것은 아름다운 기억의 보존이 아니라 악몽의 재생이며 일제의 의도된 공간속에 오늘의 일상을 수용함으로서 식민성의 경험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필자는 일제의 건축물을 근대문화재로 지정하겠다는 문화재청과 관련교수들의 발상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어떤 주권국가가 자국을 침탈하고 노예로 만든 나라의 문물을 불과 수십년만에 국가문화재로 둔갑시켜 보존한다는 말인가? 보존은 또다른 의미에서 건축이다. 역사성과 장소성을 적극적으로 지속시킨다는 점에서 특히 민감한 작업이다.

필자는 일제잔재청산의 일환으로 일제시대 건물들을 의도적으로 철거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제의 건물도 당대의 암울한 역사상과 문화를 드러내주는 것이니, 일면 보존의 값어치도 생각해 볼만하다. 악몽일지언정 그때의 일을 교훈삼아 반성하고 차후 도약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노후한 일제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붓거나 혹은 새로운 국가연구시설 신축을 가로막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일제건물은 거의가 유럽의 고전주의 형식을 차용한 절충식 건물들로 건축사적인 값어치는 별반 없다. 뛰어난 건축기술이나 사조가 반영된 것도 아니고 그 분야 전문가들의 혼이 들어있어 표현양식이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다. 철거된 조선총독부와 현 서울시청, 그리고 현 서울산업대학교 생산정보관 등에는 일본이라는 한자가 교활하게 건물의 옆면에 남겨져 있어 국가기관의 정체성에 문제를 만들어 낼 뿐이다. 그 외 대부분은 유??의 아무 도시에나 서 있을 법한 것들로 전후좌우 맥락없이 얼렁뚱땅 들어서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에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일제건축물을 문화재로 등록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현실적으로 문화재위원회에서 최종결정을 내리도록 되어있지만, 이 제도를 만드는데 참가했거나 혹은 관련프로젝트를 수주한 인사들이 위원회에 여럿 포함되어 있다면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기 힘들다. 위원회제도는 주무부서가 민원에 대한 책임을 회피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어서 서로 공생의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보존과 관련된 프로젝트와 보고서 또한, 채 수십년동안 실측하고 사진찍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건축물 보존에 대한 자생적 이론이나 담론 생성은 요원하기만 하다. 보존과 답보는 동의어가 아니다. 보존은 발전을 담보해야만 한다.

만일 일제의 건축물들 중 굳이 보호해야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이축을 통해 특정한 장소에 모아두던가 혹은 현대의 첨단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가상현실속에 저장해두는 방식으로 보존하면 될 것이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훼손이 심한 팔라디오의 빌라 한채를 3차원의 가상공간속에 완벽히 시뮬레이션한 경우가 있었다. 그 가상공간속에는 건물의 장식과 디테일은 물론 스케일감과 내부공간감까지 완벽하게 입체적으로 기록됨으로써 과거의 도면이나 사진기록과는 개념을 달리했다. 그 프로젝트는 첨단을 달리는 그 대학 컴퓨터 엔지니어들과 건축역사가들의 합작품으로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학제간 연구의 가능성과 효과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다. 어제의 가치는 오늘과 내일을 위해 존재한다.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의 근대문화제 등록제도는 재고되어야 한다.

서울산업대 건축학부 교수 황보봉

건축문화편집부 (archious@archious.com)
건축문화 2005년 4월호 [칼럼]페이지 © anc건축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