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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라져가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이제 그만했으면 하는 몇 가지
작성자 이필훈 태두건축대표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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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05-08-11 18: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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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247

 근대 초기의 상황

정확한 기록을 찾기 어렵지만 외국인에 의해 설계되어 지어진 건물 중 잘 알려진 것은 명동성당일 듯하다. 명동성당은 George Coste 신부에 의해 설계되어 1892년 착공해서 1898년 완공되었다. 이후 한국에 세워지는 교회당은 한동안 고딕형의 명동성당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한국에 세워진 근대적 건물은 거의 외국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건물들이다. 게오르그 라 란데에 의해 설계된 조선총독부 및 조선호텔을 비롯한 서울역 그리고 일본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서울시청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고려대학 등 박동진이 설계한 몇몇 석조건축을 제외한 근대적 형태의 건물들은 대부분 일본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다. 이렇듯 외국건축가들은 이미 100년 전부터 새로운 건축의 전형을 국내에 소개하고 큰 영향을 끼치는 역할을 해왔었다. 이후에도 외국의 거대기업과 연계된 건물들 혹은 대기업의 사옥이 들어설 때 마다 외국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된 새로운 모습의 건물들이 소개되었고 정부종합청사와 같은 대규모의 관공서 건물의 설계에도 외국건축가가 계획 설계를 하는 일들이 있어왔다. 이런 건물들이 들어설 때마다 외국의 건축 잡지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그 형태를 베끼는 아류의 건물들이 한동안 들어섰던 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건축적 현실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현재의 도시를 구성하는 주요건물들을 설계할 기회를 가진 것은 1960년대 이후 채 50년도 안 되는 기간으로 볼 수 있다.

IMF 직전의 상황 

포아에서 ‘1995년~2004년까지의 외국건축가의 활동’을 특집의 소재로 정한 것처럼 최근 외국건축가들이 국내에 홍수처럼 밀려들기 시작한 것은 IMF인 1997년 직전 몇 년 동안의 거품경제시기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10년 전쯤, 프로젝트의 규모와 기능에 상관없이 많은 건물에 외국건축가들이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었고 외국에서 활동하던 한국건축가들-외국이름을 쓰며 외국시민권을 가진 건축가들을 한국건축가로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접기로 한다-이 대거 국내로 유입되었으며 정부에서 발주하는 대형프로젝트는 외국건축사무소와 협력해서 안을 제출해야 현상에 당선되는 상황이었다. 이제 그때 설계되었던 건물들이 IMF의 질곡을 조금 벗어난 지금 시내의 이곳저곳에 그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다.  
10년 전 리차드 로저스, 프랭크 게리, KPF, 라파엘 비뇰리, 모포시스, 마리오 보타, SOM. 렘 쿨하스, 장 누벨 등 세계적인 지명도가 있는 건축가들이 대거 한국에 몰려들 시절에는 유명 건축가 중에 한국에 프로젝트가 없으면 창피하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고 국내의 건축 잡지가 이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자신들의 홍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자료들을 보내주던 시기였다. 이들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유행이 한창일 때는 짓고 있던 건물을 재설계해서 변경하는 경우까지 생겼었다. 옛 화신 백화점 자리에 있는 현재의 국세청건물이 그 예이다. 엘러비 베켓과 삼우에서 설계해서 철골공사가 거의 완료되었을 무렵 비뇰리에게 다시 설계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외국건축가들이 국내의 건물들을 설계할 기회를 가졌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삼성, 현대, LG, 교육보험, 포스틸 등 대부분 대기업의 건물들이 큰 부분을 차지하며, 특히 삼성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에 외국건축가들이 대거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기업들이 국내의 건축적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문화적 투자라기보다는 특이한 형태로 자신들의 기업을 드러내려는 과시적 욕구의 극단이며 건축을 취미로 즐길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개인적 취향에 따라 외국에서 보았던 이런 저런 집들을 국내에 지어보는 놀이로도 읽을 수 있다.

사실 외국건축가들이 개입되어서 발생하는 문제는 외국의 유명 건축가들이 알려진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들이 숨어있는 프로젝트들이다. 준공시점까지 외국의 건축가들이 관여된 프로젝트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명예를 걸고 완성도 있는 집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도시환경적인 측면에서는 기이하기 이를 데 없는 건물이더라도 일반인들에겐 그 형태적 독특함으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 평가받는 작품들이 되고 디테일과 재료의 사용에 있어서도 국내 건축가들에게 참고할만한 자료들을 남겨준다. 그러나 건물의 준공시점에서 외국건축가들이 증발해버리는 많은 프로젝트들이 있다. 고속철역사를 비롯한 수많은 정부발주 대형 프로젝트들이다. 이런 현상설계와 턴키에 참여하는 대형사무실들은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마다 건물의 기능별로 전문성이 있는 외국의 설계사무소나 그 당시에 유명세를 얻고 있는 외국건축가들을 찾아다니며 흥정을 한다. 이후 당선이 되면 외국의 건축가들은 막대한 설계비를 챙기고 빠져나가고 나머지 부분을 국내설계사무소가 담당한다. 그것도 직접 설계를 하지 않고 실시설계를 최하의 설계비로 하청 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당선을 위해 그려진 한껏 과장된 형태들은 건축적 고민이 배제된 상태에서 엉뚱한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만들어진다. 결국 담당관청의 엉터리 심의와 기술력 부족으로 인한 수차례의 설계변경으로 조악하게 변조된 껍질들이 여기저기 배설되어 생경스런 모습을 연출해낸다.

최근의 상황

대기업의 경제여건들이 풀리고 원화가 절상되면서 IMF로 한동안 중단되었던 외국건축가의 국내프로젝트참여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SK가 워커힐 증축과 사옥신축에 외국건축가를 고용했고 현대가 아이파크타워에 다니엘 리베스킨트를 고용했으며 상암동 IT건물의 턴키에 MVRDV를 개입시켰다. 서울시에서 청계천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세운상가 4지구 재개발을 시행키로 하여 실시한 지명국제현상은 외국건축가들만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지난 10년 동안 외국건축가들이 이 땅에 대거 등장하여  많은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끼친 건축적 영향은 도시적 환경의 측면에서 보면 몇 개의 점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서울시가 실시한 현상설계에서처럼 프로젝트의 규모와 중요도가 커질 때 외국건축가에게 그 일을 맡겨야한다는 뿌리 깊은 사대주의적 의식구조이다. 국내의 건축가가 선진외국의 건축가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건축이 그 나라의 지형과 풍토와 역사와 전통과 관계하는 문화 예술적 측면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식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조상에게 국가적 차원에서 제례를 지내던 종묘의 앞자락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데 시작부터 자국의 건축가를  배제시키는 국제현상을 실시하는 몰상식함을 자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즈음 일본에는 외국유학을 갔다 온 유명건축가가 거의 없다. 아마 노쇠한 마끼 후미히꼬가 유학파의 마지막 세대정도일 것이다. 이제 앞으로 우리가 키워야할 건축가는 이 땅에서 공부한 건축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집을 짓는 것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느 정도 기술의 습득이 있은 후에 그 일을 가장 잘 할 사람은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교육받은, 이 땅의 사람과 기후와 전통과 역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국의 문화에 대한 긍지를 가진 선진국에서 건축학도들이 외국유학에 목을 매거나 건축주들이 아무 프로젝트나 외국건축가를 찾아 헤매는 일은 없다. 맥도널드와 피자 헛, 스타벅스 루이비똥과 아르마니 같은 외국브랜드의 사옥 그리고 특정한 형태의 건물을 CI로 생각하는 외국의 거대기업의 건물은 외국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될 수 있다. 독특한 설계를 통해 특별한 용도의 기념비적인 건물을 세워 관광적인 효과를 얻으려는 프로젝트나 디즈니월드 같은 놀이시설, 기술집약적인 발전소 같이 국제적인 인식과 기술을 공유해야 하는 건물들은 그런 설계를 해낼 수 있는 외국건축가를 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네 일반적 삶을 담는 일반적인 건물들을, 비싼 값에 팔거나 임대하려고 외국건축가를 찾아다니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싶다. 프로젝트의 수임을 위해 외국건축가의 유명세를 빌리려고 찾아다니는 설계 브로커적 작태도 이제 없어졌으면 싶다. 회사와 개인의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 주변의 도시적 환경을 무시한 변태적인 형태의 건물을 만들기 위해 외국건축가를 찾아다니는 도착적인 행태 역시 이제 없어졌으면 싶다. 적어도 외국건축가들을 제어할 수 있는 문화적인 이해가 건축주들에게 그리고 시민들에게 생긴 이후에 도시의 다양성을 위해 그들을 불러올 수 있으면 싶다.

글을 마치며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다양한 가치들이 자본의 논리아래 희생되어 사라지고 있다. 제3세계의 문화적 가치가 서구적 가치로 치환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서구 선진국의 자본 논리적 관점에서일 뿐이다. 우리가 갖고 있던 많은 가치들이 이미 서구의 가치체계로 변환되었고 이에 따라 우리네 삶의 방식도 서구식으로 변화되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이 자연을 부수어가며 사는 방식으로 변하였고 주변과 어울리게 집을 지으려는 생각에서 무조건 튀는 집을 지으려는 생각으로 변했다. 외국의 건축가를 선호하는 것은 결국 옆의 것과 전혀 다른 이질적인 것을 소유하겠다는 서구의 개인적 사고의 물리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배타적이고 이질적인 변종에 천착하는 우리네 취향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 것인지를 헤아릴 수 있는 맑은 사고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2005.03. 월간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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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연숙 2024-05-05 11:04:41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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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건축가 김원의 홈피에서 퍼왔음...8월 11일 이필훈 선생님과의 인터뷰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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